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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이크 미니스트리

시편 58-64편

모자이크 미니스트리 <말씀을 걷다> 시편 58-64편

1. 시편 59편에서 우리는 다윗을 통해 신앙의 어떤 비결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시는 ‘멸하지 말아달라’는 탄원시입니다. 제목을 보면 ‘사울이 사람을 보내어 다윗을 죽이려고 그 집을 지킨 때에’라고 되어있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군대장군으로 혁혁한 공을 세웁니다. 사람들은 다윗은 만만이요, 사울은 천천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백성들의 민요가 되어서 온나라에 퍼집니다. 이 노래를 사울이 듣고 질투심이 불일듯 일어났습니다. 사울은 딸 미갈이 다윗을 좋아하는 것을 보면서 그의 질투심에 기름이 부어집니다. 그래서 다윗을 죽이려고 자객을 보냈는데, 미갈이 다윗을 창밖으로 피신시킵니다(사무엘상 18-22장). 그때부터 다윗은 도망자의 신세가 되고 매순간 목숨의 위협을 받는 곤고한 사람이 됩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이 시가 만들어집니다.

2.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원수에게서 나를 건지시고 일어나 치려는 자에게서 나를 높이 드소서” (시편 59:1) 여기 시의 시작부터 ‘나’라는 단어가 네 번이나 반복되어 나옵니다. 그리고 2, 3, 4절에 계속 ‘나’가 등장합니다. 하지만 잘 보시면 주격이 하나님으로 되어 있습니다. 다윗의 ‘나’라는 용례는 목적격과 소유격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문법적으로 해석하면, 다윗의 문제는 다윗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개인적인 문제인 듯 싶은 내용을 하나님께로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윗의 굉장히 중요한 삶의 방식이며 우리의 신앙생활의 중요한 식(式)입니다.

3. 우리도 다윗처럼 지독한 슬픔도, 억울함도, 또 자신의 실수로 인한 고난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자기연민이나 자기 서글픔에 빠져버리면 자기 고뇌와 고민에 빠져서 그냥 개인적인 문제가 됩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것을 하나님에게로 연결을 시킵니다. 그 때부터는 이것이 하나님의 문제가 되어버립니다. 이것이 다윗이 수많은 고난 속에서 살며 하나님의 성도로 살아갈 수 있었던 비결이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는 말씀은 우리 삶의 내용들을 하나님께 ‘연결’하라는 말씀입니다. 연결이 되지 않으면 스스로 소진하다가 소멸되는 인생을 살지만, 연결하면 충전되는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4. 나에게 일어나는 고난과 눈물겨운 일들이 본인이 약하고 부실해서 일어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일들이 나의 잘못 때문에 일어나는 것 만도 아닙니다. 자기 잘못에 결박되어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서 자기의 탓을 하는 것은 겸손이 아니고 건강한 것도 아닙니다. 다윗도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고, 연약했고, 범죄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자신을 하나님께 플러그 인 했을 때, 그의 죄를 도말하시고, 흰눈과 같이 깨끗게 하시는 하나님의 용서를 확신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했는데, 우리가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못난 것입니다. 선한 기초가 무너진 세상의 공격에 대해서 ‘원수’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십시오. 그리고 그 문제를 하나님께 연결하는 것입니다.

5. “주님은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오니 일어나 모든 나라들을 벌하소서. 악을 행하는 모든 자들에게 은혜를 베풀지 마소서. 셀라”(시편 59:5)

다윗은 처음에는 개인적인 일에 대해서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고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연결을 시켰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곧 다윗의 개인적인 문제가 이스라엘로 확대됩니다. 그리고 의로운 자를 학대하는 모든 나라로 눈이 넓혀집니다.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

6. 사무엘상 1장에 보면 아이를 갖지 못하는 슬픈 한나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그녀에게 아이가 없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입니다. 그래서 한나가 마음이 힘들고 괴로워서 그것을 가지고 성소에 나가서 하나님께 연결을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사무엘의 어머니가 되는 한나에게 눈을 열어주셨습니다. 이 장면을 한나는 자신이 하나님께 “심정을 통했다”고 말했습니다.(사무엘상 1:15)

이 ‘심정을 통했다’는 말은 한나의 개인적인 고통을 통해서, 한나가 하나님의 마음을 눈치채고, 알아버렸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녀의 기도가 바뀌어 버립니다. 아들이 없는 것에 대한 개인적인 슬픔이, 이제 ‘아들을 주세요. 그 아들을 하나님께 드릴께요.’로 바뀐 것입니다. 나같이 비천한 여자가 아이 하나 없다고 이렇게 슬프고 마음이 답답한데, 그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연결하니까, 말씀이 닫히고 왜곡되는 이 깜깜한 밤중 같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전달할 한 사람이 없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린 것입니다. 그래서 한나가 아들 달라고 기도하러 들어갔다가, 아들 내놓겠다고 기도하고 나옵니다. 한나는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로 연결했는데, 하나님은 한나의 시선 속에 민족과 시대의 아픔을 보게 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동일하게 우리의 개인적인 아픔을 통해서 시대의 그림을 보여주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7. 시편 59편은 다윗의 지극히 개인적인 환난이 나라와 시대를 향한 부르심으로 확대되는 장면입니다. 다윗이 개인적인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연결했더니(plug in), 하나님은 다윗의 개인적인 문제를 시대의 아픔과 민족의 문제로 열어주신 것입니다. 이제 다윗에게 사울은 원수가 아니라, 다윗의 인생에 사울의 역할이 없었다면 내가 하나님이 피난처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을까? 라는 자리까지 갑니다. 그 하나님의 섭리의 눈이 열리면 원수라는 담이 무너지는, 굉장한 영역입니다. 이제 다윗은 미움을 넘어서는 경지에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라는 시선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계속 원수를 미워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에 눈이 열리면, 저 사람이, 이 환경이 나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8. “그들은 먹을 것을 찾아 유리하다가 배부름을 얻지 못하면 밤을 새우려니와 나는 주의 힘을 노래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오리니 주는 나의 요새이시며 나의 환란 날에 피난처심이니이다. 나의 힘이시여 내가 주께 찬송하오리니 하나님은 나의 요새이시며 나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심이니이다”(시편 59:15-17)

시편 59편의 마지막, 우리가 노래하는 이 유명한 구절을 보면 다윗이 사울을 이기는 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높이는 것을 끝이 납니다. 그는 하나님이 피난처라는 사실에 눈을 뜨게 된 것입니다.

9. “나는 주의 힘을 노래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오니”(시편 59:16a)

‘아침’은 어떤 시간입니까? 아침은 흑암의 밤이 지난 끝시간입니다. 어둠이 끝난 새날이 아침입니다. 다윗은 아침이라는 시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어둡고 칠흙같고, 혼란스러웠던, 그 시간들을 지났고, 그 어두움의 목적을 보았다’라는 뜻의 표현을 ‘아침’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성경의 시간 개념은 항상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입니다. 아침이 되고 저녁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라고 합니다.

10. 개인적인 문제가 하나님께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때부터 그 문제는 하나님의 문제가 됩니다. 이때 하나님은 그 문제를 통해 시대의 아픔을 보게하십니다. 여기에서 사명과 비전이 잉태됩니다. 그리고 나서 사울이 원수가 아니라, 하나님이 피난처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곧 더 높은 섭리에서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인생의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게 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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