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이크 미니스트리 <말씀을 걷다> 시편 87-89편
1. 시편 87편은 ‘고라자손의 시’라는 표제가 붙어 있습니다. 고라는 지도자 모세에 대해 반기를 들었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 대한 그의 행동을 하나님을 멸시하는 태도로 여기셨습니다. 살아남은 고라의 자손들은 성전의 문지기와 혹은 다윗 시대에 찬양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오랜 시간동안 선조들의 죄를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전에 거하는 조건이 제사장이거나, 왕이거나, 혹은 선지자이기 때문에 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은 자가 주께 힘을 얻고 시온의 순례자의 길을 걷는 자(시편84:5)에게 주의 집에 함께 거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고라 자손의 노래가 시편 87편에서도 계속 이어집니다.
2. 시편 88편은 시편에 나오는 150편의 시들 중 가장 절망적이고 슬픈 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희망’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이 시는 ‘믿음’의 고백과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왜냐하면 시인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려졌음에 대한 탄식으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3. “주께서 나를 깊은 웅덩이와 어둡고 음침한 곳에 두셨사오며”(시편 88:6)
시인은 ‘깊은 웅덩이’와 ‘어둡고 음침한 곳’에 버려져 있는 것 같은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버린 주체가 하나님이시기에 시인의 절망은 더 깊을 수밖에 없습니다.
4. “주의 노가 나를 심히 누르시고 주의 모든 파도가 나를 괴롭게 하셨나이다”(시편 88:7)
뿐만 아니라 시인은 자신이 그냥 버려진 것이 아니라 그것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 결과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지진으로 인한 쓰나미나 태풍이 일으키는 거대한 파도의 위력은 핵폭탄 수십 기와 맞먹는 위력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무서운 파도와 같은 하나님의 진노 속에서 시인은 철저하게 버려져 있습니다. 이와 같은 자신의 처지를 시인은 ‘죽음’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5. 시인은 자신의 생명과 죽음과의 거리가 멀지 않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스올에 가깝다’거나 ‘무덤에 내려간다’는 말은 이미 죽음이 눈앞에 닥쳐온 현실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시인은 다시 살아날 수 있는 모든 소망이 사라진 상태입니다(시편 88:3-4) 시인의 절망은 5절에서 절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6. “죽은 자 중에 던져진 바 되었으며 죽임을 당하여 무덤에 누운 자 같으니이다 주께서 그들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시니 그들은 주의 손에서 끊어진 자니이다”(시편 88:5)
‘죽임을 당하여’라는 표현대로 원문으로 보면 정상적인 죽음이 아닌 살육을 당하는 것입니다. 전쟁에서 살육을 당한 뒤 매장지에 던져진 시체라는 말입니다. 전쟁에서 시체들은 한 곳에 던져져 매장을 당하거나 불에 태워집니다. 그러한 시체들에게 아무런 희망을 두지 않는 것처럼 시인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버려지고 완전히 잊혀진 상태입니다.
7. 시인의 절망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려졌을 뿐 아니라 사람들로부터도 고립되어 있음을 고백합니다.“주께서 내가 아는 자를 내게서 멀리 떠나게 하시고 나를 그들에게 가증한 것이 되게 하셨사오니”(시편 88:8a)
‘내가 아는 자’란 가까이 알고 지내던 친구들 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들조차 시인을 멀리하며 버렸습니다. 단순히 소식을 전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그들에게 시인은 ‘가증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뿐만 아니라 사람에게서조차 버림받은 시인은 자신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8. “나는 갇혀서 나갈 수 없게 되었나이다”(시편 88:8b)
이 때 시인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행위는 기도입니다. “곤란으로 말미암아 내 눈이 쇠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매일 주를 부르며 주를 향하여 나의 두 손을 들었나이다”(시편 88:9)
9. 시편 88편에는 신앙고백이 없고 대신에 처절한 울부짖음이 있습니다. 기쁨이 충만해야 하고 어떤 절망 속에서도 긍정적인 사고를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믿음이라면, 시인의 울부짖음은 신앙적인 모습과는 분명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시인의 이러한 울부짖음은 오늘 우리 영혼의 심연에 와 닿고 있으며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위로를 줍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10. 이 시편은 다른 시편과 달리 한탄이나 다급한 간구로 시작되어 감사와 찬양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 시는 처음부터 끝까지 암울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시가 우리의 영혼을 울리는 것은 시인의 절망을 깊이 이해하고 계시는 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마가 15:34)
우리 주님께서는 하나님과 사람으로부터 완벽하게 버림을 받았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주님의 모습은 이 사실을 극명하게 드러내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이었지만 그 길 끝에서 주님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3년 동안 동고동락하며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었던 제자들마저 모두 주님을 버리고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시인의 울부짖음이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이유는 시인의 그와 같은 울부짖음을 온전히 이해하시고 그 울부짖음에 귀를 기울이시는 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시인이 쏟아내고 있는 질문 속에서 오히려 희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모자이크 미니스트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편 101-106편 (0) | 2020.06.24 |
---|---|
시편 90-100편 (0) | 2020.06.18 |
시편81-86편 (0) | 2020.06.16 |
시편 78-80편 (0) | 2020.06.16 |
시편 73-77편 (0) | 2020.06.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