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이크 미니스트리 <말씀을 걷다> 시편 78-80편
1. “그들이 광야에서 그에게 반항하며 사막에서 그를 슬프시게 함이 몇번인가 그들이 돌이켜 하나님을 거듭 거듭 시험하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노엽게 하였도다 그들이 그의 권능의 손을 기억하지 아니하며 대적에게서 그들을 구원하신 날도 기억하지 아니하였도다”(시편 78:40-42)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처지에 있는 그들을 어떻게 구원하셨는가를 잊었을 때, 그들은 반항하며 하나님을 슬프시게 했고, 하나님을 거듭 시험했습니다.
2. 이 과정을 걸으면서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반석이시며 지존하신 하나님이 그들이 구속자이심을 기억하였도다”(시편 78:35)
이 말씀은 상기한 말씀(시편 78:40-42)의 앞에 나오는 말씀으로 여기에는 ‘기억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씀을 보십시오.
“그들이 입으로 그에게 아첨하며 자기 혀로 그에게 거짓을 말하였으니 이는 하나님께 향하는 그들의 마음이 정함이 없으며 그의 언약에 성실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시편 78:36-37)
3. 그들이 기억하였지만 쉽게 잊는 이유는 정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정함이 없다는 것은 어떤 ‘든든한 기초가 없다’는 뜻입니다. 든든한 기초가 없기 때문에 기억이 금방 무너졌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습니다. 그런데 그 은혜가 사라지곤 합니다. 우리는 분명히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는데, 왜 은혜를 못받은 것처럼 이해하고 사는가? 그것은 그 기억의 기초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그럼에도 그 은혜의 공간이었던 광야 시간을 원망과 불평으로 바꾸어 버립니다. 그 이유는 정함이 없는, 곧 기초가 든든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4. “그가 자기 백성은 양같이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에서 양 떼같이 지도하셨도다. 그들을 안전히 인도하시니 그들은 두려움이 없었으나 그들의 원수는 바다에 빠졌도다. 그들을 그의 성소의 영역 곧 그의 오른손으로 만드신 산으로 인도하시고”(시편 78:52-54)
이제 하나님께서 두가지 예를 들어 보이십니다. 첫째는 목자와 양떼입니다. 둘째는 그들을 성소의 영역, 곧 ‘산’입니다. 애굽를 떠나 홍해를 건너 제일 먼저 도착한 산이 호렙산입니다. 호렙산에서 어떤 일이 있었나요? 모세가 백성들을 두고 산정상으로 올라가서 하나님을 대면했습니다. ‘성소의 영역’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코데쉬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하는 뜻으로 지성소를 뜻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에 지성소입니다.
5. 모세가 호렙산 정상으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거기서 율법을 받아서 내려옵니다. 그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치리하고, 먹이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살기 위한 지침서였습니다.
6. 시편에서 가장 유명한 시가 23편인데, 시편 23편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혁명적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히브리인들에게 하나님은 함부로 접근하게나 부를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나 시편 23편에서 다윗은 하나님과 우리를 목자와 양으로 묘사합니다. 이러한 개념은 당시에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목자의 양에 대한 두가지 임무는 배부르게 함과 돌봄입니다. 목자의 가장 우선적 책임은 양을 배부르게 해야 하고, 두번째 책임은 돌보아야 합니다.
7.그런데 양은 하나님이 먹을 것을 주시면 은혜를 받습니다. 그런데 먹을 것을 주지 않으면 하나님을 부인하고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은혜의 기억이 왜 이렇게 요동치는 것일까?
그 이유는 그들의 은혜의 기억이 보이는 것에 근거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을 호렙산으로 인도한 것입니다. 왜 호렙산으로 인도하십니까? 이 백성들의 기억의 기초를 말씀에 두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향한 신뢰의 근거가 말씀위에 놓여있지 않으면 우리도 기억하지 못하는 백성이 됩니다.
8. 하나님께서 말씀을 돌판에 새겨주신 이유는 인간의 선명한 기억보다 흐릿한 기록이 낫기 때문입니다. 엘리야가 무너졌던 가장 중요한 이유도 이세벨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가나안의 종교적 열광주의 패턴에 무너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결국에 엘리야를 호렙산 굴앞에 세우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불가운데서도, 지진 가운데서도 임재하지 않으시고, 미세한 소리 가운데 임하십니다. 이 사건이 주는 메세지는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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