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주인공은 에녹입니다.
에녹이야기는 짧습니다. 에녹에 대한 기록이 성경 속에서 적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에녹의 짧은 기록에서 느끼고 묵상할 것들은 크고 깊습니다.
1. 아담의 7대손 에녹
저는 수학을 좋아하지 않지만 성경 속에서 나이 계산하는건 저의 상상력에 재미를 더해줍니다. (지루한 족보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아담이 130세에 셋을 셋이 105세에 에노스를 낳고 이때부터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기록이 됩니다.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창4:26)
성경에서는 몇명의 이름만 기록되고, 낳았지만 기록되지 않은 다른 자녀들도 많으니 아담이 235세가 될때부터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한 겁니다.
에노스가 90세에 게난을, 게난이 70세에 마할랄렐을, 마할랄렐이 65세에 야렛을, 야엣이 162세에 에녹을 낳습니다.
에녹이 태어날때에 아담은 몇살일까요?
130+105+90+70+65+162=592
에녹이 태어날 당시의 아담의 나이는 592세입니다. 아담은 930세에 죽었다고 기록이 되어 있으니 아담의 한창때에 태어난 7대손입니다.
이때에 사람들은 아담을 어떤 존재로 생각했을까를 상상해보는건 저에게 있어서 재밌는 상상입니다. 마치 우리가 어릴적 할아버지 할머니를 대하는 정도일까요?
다시 에녹으로 넘어가겠습니다.
2. 에녹 당시의 사람들
에녹은 성경 속에서 65세에 아들 므두셀라를 낳고 나서 300년간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365세에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승천한 사람입니다. 에녹이 승천하기 전까지도 아담이 살아있던 그 시기에 사람들은 어땠는지 성경 속에서 살펴보겠습니다.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 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따라 멸망을 받았도다
그들은 기탄 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희의 애찬에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자기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으로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
(유1:11-13)
에녹이 살아가던 당시의 세상은 하나님의 이름은 부르지만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고 경건하지 않은 일을 일삼던 세상입니다. 자신이 원하는대로 가인의 길을 따라, 자신의 정욕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넘치는 곳이었습니다.
히브리서는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고 하고 창세기는 에녹의 삶을 "하나님과 동행하더니"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에녹의 삶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고 그 삶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다고 평가합니다.
그럼 에녹은 무슨 계기로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었을까? 여러분은 어떤 계기로 하나님을 만나고 믿음을 가지게 되었나요?
사람은 어릴적부터 교회에 다니고 설교를 듣고 성경공부를 해도 하나님과 교제하고 동행하지 못합니다. 기도도 그냥 하지 않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이유없이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저 하루를 일상을 살아갑니다. 에녹의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에녹에게도 계기가 있었을 겁니다.
3. 에녹이 하나님을 만나다.
에녹은 주변 환경이 다들 경건하고 영적인 삶을 살아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동행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의 환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창세기 5장을 보면 에녹이 승천하고 4년 뒤에 노아가 태어납니다. 에녹이 살던 시대나 노아가 살던 시대가 다르지 않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창6:5-6)
그는 주변의 좋은 환경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한 것이 아니라 세상과 반대로 행하며 살아갑니다. 유다서 말씀에 보면 에녹은 세상을 향하여 외치고 다닙니다.
"아담의 칠대 손 에녹이 이 사람들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게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과 또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한 모든 완악한 말로 말미암아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이 사람들은 원망하는 자며 불만을 토하는 자며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라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하며 이익을 위하여 아첨하느니라."
(유1:14-16)
에녹에게는 어떤 계기가 있었을까요? 에녹이 언제부터 하나님과 동행하였는가를 보면 됩니다. 에녹은 65세에 아들 므두셀라를 낳고나서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합니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우고 이뻐하느라 말씀에서 잠시 멀어지기도 하는데 에녹은 오히려 그때부터 하나님과 동행합니다. 므두셀라라고 이름지은 것도 심상치 않습니다.
므두셀라는 성경 속에서 969세를 살아 가장 오래산 인물입니다. 그리고 그 이름의 문자적임 뜻은 "창을 던지는 자" 입니다. 고대에서는 창을 들고 그 성이나 마을을 지키는 자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창을 던지는 사람의 손에 그 성의 운명이 걸려있습니다. 그가 죽으면 그 성은 그 전쟁에서 지는 것입니다.
므두셀라에게는 이런 예언이 따라 옵니다. "그가 죽으면 세상에 종말이 온다." 그가 죽는 날 세상에 심판의 창이 던져진다는 예언을 에녹이 듣고 므두셀라라 이름 짓습니다.
"홍수가 땅에 있을 때에 노아가 육백 세라." (창7:6)
므두셀라가 187세에 라멕을, 라멕이 182세에 노아를, 노아가 600세 되던 해에 홍수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그 해는 187+182+600=969 므두셀라가 969세를 살고 죽은 해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에 그냥 감동없이 지나가던 본문도 그 속에서 숨은 의미를 하나씩 알아가다 보면 은혜가 됩니다.
4. 하나님의 심판을 아는 자
에녹은 세상에 심판이 온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에 그의 나머지 삶이 바뀝니다. 종말의 예고는 에녹에게 하나님과의 동행이라는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기억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다른 동기로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는 한계가 있습니다. 내가 잘되기 위해서, 내가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종교를 찾고 교회를 찾는 이들에게는 조건이 맞지 않으면 언제든지 다시 세상으로 떠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둡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떠나는 것을 우리는 바로 옆에서 보아왔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기억하지 못하면 사람은 계속 미끄러집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야 하나님은 내가 잘못해도 다 이해하고 사랑하셔라고만 생각하고 사랑의 본문만을 묵상하고 좋아라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일4:7-8)
요한일서의 말씀처럼 하나님은 사랑이 맞습니다. 그런데 그 사랑을 잘못이해하면 타락합니다. 자녀의 잘못을 감싸기만 하면 그 아이가 사랑으로 커서 성숙하게 자랄까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알고 있습니다.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현대인들이 심각한 도덕적 타락에 빠지는 이유는
현대인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천국과 지옥을 동화 속 이야기로 만들어 희화해놓고 믿지 않습니다. 실재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그랬더니 그 결과가 도덕적인 타락입니다. "한번 사는 인생, 어차피 죽으면 끝나는 인생,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대로 살다가 가련다." 하고 YOLO(You Only Live Once) 라이프를 외치는 것이 지금의 세대입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이라고 다른가요? 다르지 않습니다. 부자동네 교회에서는 지옥설교하면 망한다는 소문이 돌던때도 있습니다. 그들이 세상에서 즐기고 누릴 것이 많은데 지옥설교하면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전도서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전11:9)
새번역본으로 보면 조금더 명확해집니다.
"젊은이여, 젊을 때에, 젊은 날을 즐겨라.
네 마음과 눈이 원하는 길을 따라라.
다만, 네가 하는 이 모든 일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만은 알아라."
(전11:9, 새번역)
너의 마음대로 사고 즐겨라, 원하는 대로 살아보아라 그러나 심판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라. 역설적인 말입니다. 심판이 있음을 아는 사람은 함부로 살지 못합니다.
현대인의 도덕적 타락은 심판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법만 피해가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분명히 존재하고 언제일지 알 수 없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 다시 오실 재림이 신천지 이만희처럼, 통일교 문선명처럼 수많은 사이비 교주들처럼 사람의 몸으로 오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5. 심판을 아는 에녹의 삶
심판의 예언을 들은 에녹의 삶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으로 변하였는데, 그 삶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산으로 들어가서 움막짓고 하루종일 성경만 보고 기도만 하는 삶이었을까요?
에녹은 그의 가족들을 부양할 책임을 가지고 양을 기르고 농사를 지으면 경제활동을 하며 아들 므두셀라를 양육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에녹은 사람들을 향해 외칩니다.
"이런 사람들을 두고 아담의 칠대손 에녹은
이렇게 예언하였습니다.
"보아라, 주님께서 수만 명이나 되는
거룩한 천사들을 거느리고 오셨으니,
이것은 모든 사람을 심판하시고,
모든 불경건한 자들이 저지른 온갖 불경건한 행실과,
또 불경건한 죄인들이 주님을 거슬러서 말한
모든 거친 말을 들추어내서,
그들을 단죄하시려는 것이다."
(유1:14-15, 새번역)
에녹은 당시 죄악으로 물들어가는 세상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습니다. 멸망으로 향하는 이웃을 향하여 사랑의 메세지를 전하지만 세상은 그 메세지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아마 배척받고 무시받았을 겁니다.
"회개하세요. 심판이 다가왔습니다."라고 전하는 사람들에게 "감사합니다. 이렇게 좋은 말씀을 전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왜 저런 말도 안되는 말을 하냐, 기분나쁘게, 지혼자 구원을 받든지 말든지" 분노하거나 비아냥거립니다.
에녹도 비슷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주변인들의 멸시와 반대와 무시 속에서 혼자 떠나 도피하며 살지 않고, 에녹은 300년 동안 메세지를 전하는 자였습니다. 저는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알고 있습니다.
에녹의 동행은 혼자 고고하게 말씀보고 기도하고, 신령한 사람처럼 영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일상을 살아갑니다.
6. 동행하는 삶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이야기할때에 빠지지 않는 유명한 중세의 수도사가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로렌스'입니다.
중세에 카르멜 수도원에 로렌스 수도사는 정식 수도사가 아니라 면접에서 떨어져 평신도 수도사가 된 사람으로 수도원 부엌에서 수도사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를 하던 사람입니다. 로렌스 수도사는 다른 사람들이 수도에 전념하라고 열심히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를 하며 일생을 보낸 사람입니다.
로렌스 수도사의 일기에 이런 일기가 기록되었습니다.
"나는 고기를 구울때에도
주의 만찬에 참여하는 것처럼
거룩한 하나님의 임재를 느꼈다."
"하나님, 이 부엌이 천국이 되게 하소서"
카르멜 수도원을 나온 수많은 정식 수도사들중에 이름이 기억된 사람은 없습니다. 평신도 수도사로 밥짓고 설거지 하던 로렌스 수도사 이름만이 지금까지 기억될 뿐입니다.
하나님의 동행이란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살아가는 것, 일상의 부지런한 삶 속에서도 하나님을 인지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모여서 예배드리고 함께 찬양하고 성경을 배우는 것은 일상에서의 동행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는 시간입니다. 하나님과 뜻을 같이 하기 위해 알아가는 귀한 시간입니다.
물리적으로 거리가 떨어지면 사람들은 마음도 같이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몸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이 괜히 나오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을 그 어느때보다 더 붙잡고 하나님 앞으로 이끌어 가려고 더 노력해야될 때입니다. 마음이 돌처럼 굳어지지 않도록 매일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힘쓰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복된 자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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