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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이크 미니스트리

레위기 5-8장

말씀을 걷다 Mosaic Ministry, 레위기5-8장

1. 레위기 1- 6:9까지는 다섯개의 제사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죄입니다. 번제와 소제는 매일 드리는 제사이고, 화목제, 속죄제, 속건죄는 개인적 차원에서 각자가 하나님 앞에 나가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레위기 6:9까지에 나온 5가지 제사는, 백성들이 그 제사를 위해서 하나님 앞에 나올 때 어떤 ‘내용’과 ‘절차’를 가지고 나와야 하는가?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리고 6장에서 이 ‘번제’가 다시 나옵니다. 동일주제의 반복같지만 레위기 6장부터는 그 제자들을 직접 집례하는 ‘제사장이 어떻게 해야하는가?’에 대한 말씀입니다.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명령하여 이르라”(레위기 6:9)

2. 제사장들이 번제를 집례하며 중요한 점은 ‘불이 꺼지지 않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전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번제물은 아침까지 제단위에 있는 석쇠위에 두고 제단의 불이 그 위에서 꺼지지 않게 할 것이요”(레위기 6:9) 이것이 중요함을 세 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제단위의 불은 항상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 불은 끊임이 없이 제단위에 피워 꺼지지 않게 할 지니라”(레위기 6:12-13)

제사장은 제물을 태우며 불을 꺼트리지 말아야 한다는 명령은 이중적 의미를 내포하는데, 성경에서 ‘불’을 어떻게 말씀하는가에 답이 있습니다. 불은 태워서 정결케 합니다. 곧 ‘정화’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 불이 가지는 자체적 성격은 ‘심판’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지옥을 ‘꺼지지 않는 불’로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불’에 대한 이면적 의미는 ‘정결’과 ‘정화’이고, 자체적 의미는 ‘지옥’이라는 ‘심판’입니다. 이 심판은 종말론적입니다. 곧 하나님 나라의 완성의 과정의 마지막 부분에 위치해 있습니다.

3.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일상에는 매일 드리는 번제의 제사를 ‘종말론적 관점’에서 드려야 합니다. 이 종말에 대한 우리의 대표적인 오해는 ‘인지적’ 차원에서 종말을 보는 것으로, 언제 올까? 어느때 올까? 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는 종말론적 관점은 ‘목적 지향성’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을 통해서, 하나님이 처음 목적하신 것을 ‘완성’하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종말론적 관점은 우리는 ‘오늘’ 나의 ‘삶의 자리’에서 종말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곧 종말에 대한 의식이 ‘오늘’의 삶에 작동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음’이라 하고, 춘향이가 이몽룡에 대한 믿음으로, ‘오늘’을 절개로 살아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4. 이 종말론적 신앙은 우리에게 ‘오늘’이라는 난제를 풀어내는 중요한 열쇠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부조리함과 설명할 수 없는 고난을 지나는데, 결국 이 모든 것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순간이, 하나님의 인격과 성실함을 통해서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믿음입니다. 또 종말론적 믿음은 삶의 부조리와 신자의 억울함에 대한 건강한 관점을 제공하는 동시에, 우리가 가해자된 인생, 곧 우리의 실수와 연약함에 대해서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에 대한 소망도 제공합니다. 아름다운 마지막을 준비할 때가 ‘오늘’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런 시각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정결해 지는 것입니다.

5. 이제 11절은 매우 난해하면서 깊은 생각을 요청합니다. “그 옷을 벗고, 다른 옷을 입고 그 재를 진영 바깥 곧 정결한 곳으로 가져갈 것이요”(레위기 6:11)

번제를 집례하는 제사장은 제사를 집례할 때 입었던 세마포옷을 벗고 다른 옷을 입어야 합니다(환복). 세마포 옷을 벗고 ‘영문 밖으로’ 나가야 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제사장은 번제를 집례할 때, 세마포 긴 옷을 입고, 세마포 속바지로 하체를 가리우고 제단에서 태워진 제물을 가져다가 제단 곁에 두고, 그리고 옷을 환복해야 합니다. 이 부분이 만만치 않습니다.

6. 원래 제사장의 옷은 화려합니다. 그런데 제사장이라고 번제를 드릴 때는 세마포 옷으로 환복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번제의 실체이신 예수님께서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실 것을 예표합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목수의 가정에서 태어나셨지만,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런데 하늘의 모든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낮아지셨습니다. 번제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예수님의 겸손(Humiliation)입니다. 이 제사장의 세마포 옷의 첫번째 의미는 그리스도의 겸손을 예표합니다.

7. 그리고 제사장이 고의로 하체(허리부터 넓적다리까지)를 가린 것은, ‘하체’는 인간의 원죄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무화과 나무잎으로 어디를 가렸습니까? 하체를 가렸는데, 그들이 가린 것은 ‘원죄’를 자기 스스로의 방법, 곧 인위로 가린 것을 상징합니다. 또 인간의 원죄는 하체의 활동, 곧 생식활동을 통해서 후손들에게 ‘유전’된다는 상징적인 의미입니다(죄의 유전).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의 나무잎 옷을 벗기시고, 가죽옷을 입히셨습니다. 가죽옷은 어린양이 피흘려 죽어야 만들어질 수 있는 옷으로 창세기에 제일 처음 나타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8. 세마포 옷은 ‘거룩함’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성밖으로 불탄 재를 가지고 나갈 때 제사장은 세마포 옷을 벗고 다른 의복을 입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진 밖’은 세속을 상징함으로 세마포 옷이 거기에 더러워지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디에서 돌아가셨습니까? ‘영문 밖에서’돌아가셨습니다. 십자가는 골고다라는 영문 밖, 십자가에 처형을 받은 시신들을 버리는 곳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이것을 레위기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 옷을 벗고 다른 옷을 입고 그 재를 진영 바깥 정결한 곳으로 가져갈 것이요”(레위기 6:11)

9. 제사장은 세마포 옷을 벗고 환복을 한 후에 재를 가지고 진영 밖, 곳 저주받은 갈보리(골고다)로 가야 합니다(재는 죽음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레위기에서는 그 저주받은 진영 밖을 ‘거룩한 곳’이라고 기록함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예표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영문 밖에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10. 성경의 그림언어가 보이십니까? 레위기는 그 진영 바깥을 ‘정결한 곳’이라고 합니다. 인간이 보기에는 영문 밖, 거기 십자가가 세워진 골고다는 죽음과 해골의 장소지만, 성경은 그곳을 가장 ‘깨끗한 장소’라고 하는 겁니다. 왜? 그 이유는 오직 한가지, 바로 거기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름다운 십자가를 목에 걸고 다니는 것도, 그 저주의 십자가 형틀이 예수님으로 인해서 아름다운 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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