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이크 미니스트리 <말씀을 걷다> 사무엘상 13-15장, 사순절 <40일 Salt 3.3 캠페인>
1. 사울은 다윗과 늘 대조되어 실패자요 나쁜 왕으로 기억됩니다. 반면에 사울과 대조되는 다윗은 늘 우리의 소원이 됩니다. 그러나 사무엘서를 걷는 방법에서 중요한 관점은 ‘사울이 무엇인가?’입니다. 성경이 하고픈 이야기는 과연 사울은 우리에게 어떤 내용을 담아주는가? 우리가 어떻게 사울이 되지 않고 다윗이 될 수 있는가? 입니다. 사무엘상 15장에서 사울은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명령에 순종하지 않아서 폐위됩니다.
2. 사무엘상 13장에서는 블레셋과의 전쟁 앞에서, 사무엘이 집례하는 제사를 먼저 드리고 전쟁을 해야 하는데, 기한 내에 사무엘이 오지않자 급한 사울이 자기가 제사를 집례하는 사건이 나옵니다. 그는 혹독한 꾸중을 듣습니다. 그것이 이어지면서 15장에서는 더 급박해 지면서 ‘하나님이 왕을 버렸다’는 곳까지 도달합니다. 아말렉을 진멸하지 않고 아각 왕을 사로잡아오고 좋은 전리품을 남깁니다. 사울은 그것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려고 했다고 변명했지만 사무엘은 냉정하게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유명한 이야기를 합니다. 여기에서 순종과 제사가 대조됩니다. 대조되는 것은 대립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여기서 순종과 제사의 함수관계를 알아야 합니다.
3. 마태복음 9장에는 예수님께서 세리 마태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는 사건이 나옵니다. 이 모습을 보고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냐고 비난합니다. 예수님은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 쓸데가 있다고 하시면서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태 9:13)고 하셨습니다.
4. 하나님은 제사도 율법도 요구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뜻은 긍휼을 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율법이나 제사를 비난과 심판의 몽둥이로 왜곡시켜 사용했습니다. ‘나는 지켰는데 너는 안지켰다.’가 됩니다. 실감나게 적용하면, ‘너 기도 안해서 벌받은거야’라고 합니다. 자기는 기도했다는 거지요. 기도는 하는데 왜 기도하는지를 모르는 겁니다. 내가 기도했다는 것은 내가 공격할 수 있는 것을 힘들게 힘들게 참는다는 어려움을 자각하고 순종한다는 의미가 있는데 말입니다.
5. 오늘 우리가 걸으며 보고있는 사울의 실패도 같은 맥락입니다. 제사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의 한 예식입니다. 그런데 사울은 이것을 종교적 치장(형식)으로 타협해버립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은 제사는 조건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내용으로 지키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제자들과 함께 밀밭 사이로 가셨습니다. 제자들이 시장해서 이삭을 잘라 먹었는데 바리새인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한다고 비난했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다윗이 함께한 동료들과 함께 시장할 때에 성전에서 진설병을 먹은 이야기를 하시면서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6. 이 말씀에서는 제사가 자비와 대조됩니다. 바리새인들이 가진 율법과 종교행위가 비난과 정죄를 위한 규칙이 되어, 그 내용이 품고 있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방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7.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사울에 대해서 또 한가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사울은 대단히 종교적인 사람입니다. 바로 앞에 14장에서 블레셋과 전쟁을 하는데 아들 요나단이 승기를 잡자 사울은 이것에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고 성전(聖戰)을 선포합니다. 그래서 그는 금식을 명합니다. 그런데 그 금식을 아들 요나단이 어깁니다. 요나단은 아버지가 금식을 명 한지 모르고 꿀을 먹고 힘을 얻었는데 나중에 아버지가 전쟁 중에 금식을 명해서 병사들이 지쳤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승리의 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것이 문제가 되어 누구의 잘못인가를 따지니까 금식을 어긴 요나단의 잘못되 되어버리는 겁니다.
8. 그러자 사울은 지체없이 요나단을 처벌하기로 합니다. 사울은 지극한 종교인입니다. 그러나 그는 믿음, 곧 하나님과의 관계된 내용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형식은 있는데 하나님께 묶여 있지 못합니다. 신령한 것의 ‘내용을 공급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울의 종교는 치장이고 형식입니다. 그것은 결국 후에 자기 힘을 유지하는 보조수단이 되어버립니다. 기독교 신앙은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과 묶여있는 것입니다. 여기 기가 막힌 표현이 나옵니다.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끌어왔다 하는지라”(사무엘상 15:21)
9. 사울은 자기 하나님이 아니라 “당신(사무엘)의 하나님 여호와”라고 합니다. 그는 하나님과 단절되어 있습니다. 형식은 있는데 내용이 흐르지 않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이 하시려고 하는 것, 하나님이 만들어 내시려는 것에 아무런 기업이 없는 사람입니다.
10. 우리는 사울을 실패한 사람, 다윗을 성공한 사람으로 보기 쉽지만 그런 대조가 아닙니다. 사울과 다윗의 대조는 실패와 성공의 대조가 아니라 하나님이 없으면 어떤 결과에 도달하느냐의 메세지입니다. 사울을 쫒아다니면서 비난하지 말고 은혜받은 다윗을 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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