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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5-38장
지난 주 손녀가 겨울 방학을 했다. 내가 “할비가 무엇을 해줄까?”라고 물었더니, 손녀는 “할비와 함께 있고 싶다”고 대답했다. 하나님을 수단으로 찾던 야곱이 이제 오직 하나님을 만나러 벧엘로 올라간다. 이런 야곱의 모습이 만들어 지기 까지 그는 긴 시간과 수많은 우여곡절을 지나야 했다. 조급하게 빠른 결말을 기대하는 우리에게 이런 야곱의 변화는 깊고 소중한 이야기를 해준다. 신앙은 순간의 깨달음이 아니라 인내와 자라남의 과정이 필요하고, 그 과정을 하나님은 선용하신다. 기다림과 인내의 과정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으로 자라나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은 우리의 인격적인 항복을 받아 내신다는 것이다. -> 그래서 설득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기계적으로 조정하거나 조작하지 않으신다는 뜻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격과 우리의 헌신에 대해서 쉽고, 빠르고, 완벽하게 만들어지고, 그런 식으로 우리 인생이 인도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실상은 야곱이 생애와 같이 우리는 번번히 하나님과 밀고 당기기를 계속 한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대부분의 성도가 신앙 현실 안에서 경험한다. 이에 대해 야곱의 생애가 답을 준다. 야곱의 생애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루시려 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필요성, 그 필요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에 대한 항복이다.
야곱은 모든 삶의 정황에서 인간이 생각해 낼 수 있는 모든 생각과 방법을 동원해서, 문제를 해결하고 이익을 구하는 사람으로 소개되고 있다. 하나님의 선택과 축복 안에 있지만 그는 자신의 고백 대로 험악한 인생을 살았다. 아버지를 속인 야곱은 자식에게 속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게 속는 인생]을 산다. 세상 사람의 일반적인 삶과 방불하게 세상적인 판단과 결정과 꾀를 내고, 속이고, 도망치는 모습이 그려진다.
야곱이 다른 점은 하나님이 그를 자녀로 삼으셨기 때문에, 그의 모든 일들이 하나님과 잇대어 있다는 것이다. 신자와 세상 사람들이 겪는 삶의 여정은 다르지 않다. 같은 환경, 같은 문제를 가지고 산다. -> 그러면 무엇이 다를까? 그 길을 겪으며 그 경험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대해서는 믿지 않는 자들과 신자는 다르다. 세상에는 답을 줄 안내자가 없고 우리에게는 아버지가 있다. 이것이 야곱의 생애이다. 이것이 야곱에게는 하나님의 간섭으로 계속 드러난다.
하나님이 야곱을 당신의 자녀 다운 모습으로 만들어 가시는 모습이 현독자인 우리에게는 야곱의 생애에서 확인 하는 바와 같이, 신앙 현실 속에서 답답하게 느껴진다. 소원이 수준을 보장하지 못한다. 나의 소원과 하나님의 뜻이 서로 갈등할 때, 하나님은 여전히 성실하게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 가신다. 영원하신 하나님은 얼마든지 더 기다리실 수 있고 결국 우리의 항복을 받아 내신다.
여기에서 우리는 중요한 두 가지를 구분해야 한다. 첫째는 [되어 가는 것]이고, 둘째는 [쓰임 받는 것]이다. 이 두가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되어 가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 다운 가치관으로 인격이 만들어져 가는 것이다. -> 그러나 쓰임 받는 것은 은사에 대한 것이다. 되어지는 것이 성령의 열매라면, 쓰임 받는 것은 성령의 은사이다.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인격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을 수 있다. 우리가 목표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 안에서 성품, 곧 성령의 열매와 쓰임에 대한 성령의 은사가 통일되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도 하고 구제도 하고 착한 일도 해야 한다. 그러나 신자의 성품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그것은 종교에 불과하다. 결코 하나님의 저울을 움직일 수 없다. -> 일과 나의 유용성이 신앙의 핵심이 아니다. 바울은 ‘내가 복음을 전한 후에 내가 두려워 하는 것은 내가 버림을 받을까 두려워 함이라’ 고 했다. 물론 그런 일은 없다. 우리는 버림 받지 않는다(Eternal Security).그러나 바울이 내가 버림을 받을 까 두려워한다고 하는 말의 뜻은, 그의 복음을 전하는 열심에,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품의 자라남에 대해서 항상 고민했다는 뜻이다. 정리해서 말하면, 내가 얼마나 쓸모 있고, 일을 잘하는 것으로 신앙을 대신할 수 없다.
우리는 빨리 항복하고 더 많은 시간을 주를 위해 살자는 사고 방식 때문에 스스로의 신앙에 답답해 하고 좌절한다. 하나님께 빨리 항복하고 쓰임 받자는 생각은 기특해 보이지만, 이것은 초등학교 졸업하고 부모 앞에 와서 ‘그동안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부터는 제가 벌어 먹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부모가 ‘너 뭐할라구?’ 하면 ‘네, 목 좋은 곳에 가서 구두를 닦겠습니다.’ 하면 철부지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쏙 빼어 닮은 당신의 자녀가 되기를 원하신다.
[기도]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I am God Almighty (창세기 35:11)
우리의 갈등과 기다림, 인내와 고난이 낭비되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닮아가는 길이 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의 허락 안에 일어나는 모든 범사에 우리의 믿음이 자라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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