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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목사 메세지

물과 피의 복음

복음을 전한다고 이야기하는 우리는 우리가 자주, 흔히 이야기하는 복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을 해보아야 합니다.

복음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어떤 대답이 있을까요? 보통은 십자가 사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물론 맞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이 복음입니다. 그런데 그게 100% 인가? 그게 끝일까? 하는 고민도 필요합니다.

우리는 복음에 대해서 경험적으로만 내 생각으로만 이해하고 알고 있으면 안되고, 성경에서는 복음을 뭐라고 정의 내리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가장 먼저 쓰여진 신약성경인 마가복음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오! 그렇다면 그 다음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바로 복음이라는 건데 어떤 이야기가 바로 이어서 나오는가 하면 세례 요한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이말은 무슨 말일까요? 세례요한이 복음에 있어서 중요한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례 요한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그냥 세례요한이다 하나입니다. 
 
세례요한이 누구인지 왜 등장했는지부터 이해를 차근차근 하면서 복음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믿음이라는 것이 교회를 오래 다녀야만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머리로 이해못해 그러니깐 그냥 일단 믿어 그러면 언젠가 뿅하고 갑자기 성령받고 막 방언을 말하고 믿음이 바닥에서 갑자기 하늘로 점프해서 올라가는 흔히 믿음의 도약으로만 믿어지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인류의 대표자인 세례 요한에게 받으신 세례는 인류의 모든 죄에서 구원하는 주님의 구원의 출발점입니다. 그래서 사복음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의 복음의 사역의 시작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신약 중에서 가장 먼저 작성된 마가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막1:1) 으로 시작하고 바로 세례 요한의 등장과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풀었다는 사실을 기록합니다. 

또한 사도들, 바울과 베드로 요한도 예수님의 세례와 십자가의 복음을 함께 전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갈3:27)고 선포합니다. 복음의 시작은 요한의 세례 이후에 시작했다고 사도행전 에 기록합니다. 


1. 물의 복음 - 세례요한

누가복음 1장에서는 세례요한의 출생에 대해서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눅1:5]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한 사람이 있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세례 요한의 아버지는 아론의 후손 중에서 아비야 반열의 제사장이고, 어머니 역시 아론의 후손입니다. 즉 세례 요한은 제사장 가문에서 태어난 자입니다. 레위지파 중에서 아론의 후손, 특히 아비야 계열의 제사장들이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제사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속죄제입니다. 

구약의 율법을 기록한 지도자 모세, 그리고 모세의 형 아론은 첫 대제사장이 되어 1년에 한번 전체 이스라엘을 위한 속죄제를 드렸습니다. 

사실 속죄제사의 모습은 아담과 하와의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자신의 죄를 대신해서 흠과 점이 없는 어린양의 머리에 안수를 하고 피를 흘려 제사를 드리는 것이 모세와 아론의 때에 와서 제도적으로 정리가 된 것입니다. (오늘은 자세한 과정에 대해서는 생략하겠습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레위기 16장 이하를 보시면 됩니다)


제사에서 중요한 것은 제사장과 제물과 안수 그리고 입니다. 

1) 제사장은 대표자입니다. 제사를 드리기 이전에 먼저 자신의 죄를 위한 속죄제를 드리고 이스라엘 전체를 위한 제사를 드립니다. 

2) 제물은 흠과 점이 없어야 합니다. 흠은 살면서 생기는 여러 상처나 흠집이고, 점은 태어날때부터 타고나는 것입니다. 이 두가지가 없는 것이어야만 제물의 자격이 있습니다. 

[벧전1: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3) 피는 생명을 의미합니다. 피를 흘려 제사를 드리는 것은 생명을 바친다는 의미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피흘림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룰(Rule) 입니다.

[레17: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4) 안수는 전가를 상징합니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겨지는 것입니다.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안수하고 그에게 지도권을 넘겨준 것처럼, 이스라엘의 대표자로 세워진 대제사장이 제물 위에 손을 얹고 안수함으로 1년간의 모든 이스라엘의 죄가 넘어간 것입니다. 이것이 구약의 제사의 모습입니다. 

[대하29:23-24]
23 이에 속죄제물로 드릴 숫염소들을 왕과 회중 앞으로 끌어오매 그들이 그 위에 안수하고
24 제사장들이 잡아 그 피를 속죄제로 삼아 제단에 드려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속죄하니 이는 왕이 명령하여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번제와 속죄제를 드리게 하였음이더라

세례요한은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구약의 대제사장 계열의 후손으로 예수님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마11:11-12]
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1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사람, 인류의 대표자로 삼은 자입니다. 이스라엘 안에서도 적합한 아론의 후손입니다. 그리고 그 세례요한이 요단강에 찾아온 예수님의 머리 위에 안수를 합니다. 그때에 요단강 위로 하나님의 음성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마3:15-17]
1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푹 담궜다가 빼는 것이 세례입니다. 예수님의 세례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머리에 손을 얹어 안수한 것입니다. 

자신 앞에 세례를 받기위해 나온 예수님에게 세례주기를 거부했던 요한에게 예수님이 이야기합니다.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나에게 안수하여 모든 의를 이루자!

 

구약은 신약의 그림자입니다. 모세와 아론에게 알려주었던 그 그림자가 예수 그리스도가 나심으로 실체가 나타납니다.

[히8:1-7]
1 지금 우리가 하는 말의 요점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라 그는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2 성소와 참 장막에서 섬기는 이시라 이 장막은 주께서 세우신 것이요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니라
3 대제사장마다 예물과 제사 드림을 위하여 세운 자니 그러므로 그도 무엇인가 드릴 것이 있어야 할지니라
4 예수께서 만일 땅에 계셨더라면 제사장이 되지 아니하셨을 것이니 이는 율법을 따라 예물을 드리는 제사장이 있음이라
5 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이르시되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따라 지으라 하셨느니라
6 그러나 이제 그는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그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시라
7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라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사람의 죄를 동물에게 전가하여 피를 흘리는 제사는 불완전합니다. 사람의 죄이기 때문에 점과 흠이 없는 사람이 대신 죄를 지고 피를 흘려야하는데 사람은 점과 흠이 없는 자가 없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야 하는 이유입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처음 만날때에 예수님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지 못해 세례를 거부했었던 사람입니다. 그랬던 세례요한이 예수님에게 안수하고 세례를 베풀때에 하나님의 음성과 성령의 임함을 경험하고서야 깨달은 것입니다. 

[요1:29-34]
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0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31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32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34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세례요한이 자신의 제자들에게 이틀날이 되어 예수님에 대해 말한 것입니다. 

세상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세례요한이라는 대제사장, 점과 흠이 없는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 세례요한의 세례,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피 흘려 돌아가심 이 과정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사실을 분명히 알았고, 예수님의 사역의 시작은 세례요한에게 받은 세례부터이며, 후에 베드로 또한 예수님의 세례에 대해서 강조하고 기억하며 교육합니다. (사도행전 10장 34-40절)

[행10:37] 곧 요한이 그 세례를 반포한 후에 갈릴리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된 그것을 너희도 알거니와

다른 세례도 아니고 요한의 '그 세례'입니다. 우리가 받은 세례는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지고 가심을 인정하고 우리가 동참한다는 의미의 세례여야 합니다.

[롬 6:3-4]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9. 예수님의 세례는 물의 복음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십자가 사건은 피의 복음입니다. 이것은 증언하는 분이 바로 성령입니다. 물과 피의 복음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둘 중에 하나가 없다면 그것은 무언가 불완전한 복음입니다.

[요일5:5-8]
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6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7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

요일5:5-8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물과 피와 성령으로 임하였다고 증거합니다. 물로 임하심은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아 인류의 죄를 단번에 담당했다는 증거이며, 피로 임하셨다는 것은 그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다 갚아주셨다는 증거입니다. 
 

2. 피의 복음- 십자가와 부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복음은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십자가의 복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요?

우리는 이 십자가와 부활절을 위해서 매년 사순절을 기념하고 특별 새벽기도 혹은 40일 기도회 등등의 모습으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해마다 저는 부활절만 되면 세월호 사건이 기억납니다. 그리고 부활절의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합니다

부활절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일까? 교회의 행사일까? 달걀을 나눠주는 날일까? 부활절을 준비하면서 다양한 행사들(재의수요일, 40일 특별새벽기도, 고난주간, 종려주일, 성금요일 등등) 속에 과연 우리는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요 아니면 Burn out 되어버릴까요?


<노란리본과 십자가>

세월호 사건때에 사람들은 너도나도 노란리본을 달고 있었습니다. 노란리본의 의미는 "전쟁터에 있는 사람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마음"입니다. 저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바로 이 노란리본과 같은 마음으로 다가옵니다.

노란 리본의 의미는 '너를 잊지 않을게', '너를 기다릴게' 입니다. 세월호는 오랜 시간이 흘렀고 이제는 사람들에게도 잊혀져가고 잘모르는 세대들이 자라나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것을 정치적으로 끌어가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는 그런 정치적인 이슈들은 별로 궁금하지 않습니다. 다만 비슷한 마음으로 노란리본을 볼때에 십자가가 떠오릅니다.

"나를 기념하라"
내가 너희를 대신해서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려 죽었다. 그런데 우리에게 이 마음이 와닿지 않습니다. 그것이 나랑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물음이 생깁니다. 그래서 뭐 어떻게 하라고? 예배 나오라고? 전도하라고? 헌금하라고?
십자가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사단에게 속아 선악과를 먹으며 스스로 신이 되고자 했었던 아담과 하와 이후로 사람안에 불어넣어졌던 영은 죽었고 스스로 선을 행할 능력을 잃어버리고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는 존재가 된 사람에게는 그 죄의 결과로 사망만이 남아있습니다.


그 상황 속에서 사람보다 더 안타까워하는 존재가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역시나 이것도 우리의 맘에 와닿지 않습니다.

팽목항에 서서 가라앉는 배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내가 대신 저 속에 들어가더라도 내 자식, 내 가족을 살리고 싶다는 그 마음입니다. 그리고 말씀이 육신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부모가 되어 보니 조금 더 알듯 합니다. '내가 저 속에 대신 죽어서 내 자식이 살아돌아올 수만 있다면,나는 10번이건 100번이건 대신 죽을 수 있다.'

하나님의 마음이 이런 마음입니다. 내가 대신 죽어 내 사람하는 자들이 살수 있다면 내가 사람의 몸으로 와서 대신 죽음을 담당하겠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2:5-8)

내가 대신 죽음으로 저들을 살리고 싶다는 그 마음이 십자가 위에서 이루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속에 있는 하나님의 마음은 교회의 수많은 행사 속에 묻힐 만한 가벼운 내용이 아닙니다. 

가장 낮은 곳으로 오신 예수님이, 가장 비참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한 예수님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사실 행사가 아니라 '나를 기념하라'는 것입니다. 

"전쟁터와 같은 이 세상에서 내가 대신 죽음을 기억하고, 무사히 하나님의 나라로 내 품으로 돌아오거라."
 
제가 느끼는 십자가와 부활절의 본질, 피의 복음의 본질은 이것입니다. 그리고 이 피의 복음의 전제는 세례를 받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세례없는 십자가는 없습니다. 또한 십자가 없는 세례도 없습니다. 이 둘은 하나입니다. 
 
만일 우리가 성령과 물과 피의 증거를 다 믿지 않고 "물"을 빼버리고 "성령과 피"의 증거만 믿는다면 그것은 불완전한 믿음입니다. "물과 피"는 필연적 인과관계를 가집니다.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받으신 물(세례)가 없었다면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리실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십자가 사건, 피의 복음을 믿습니다. 그러나 요한의 세례는 자세히 알아도 되지만 몰라도 상관없는 하나의 에피소드로 넘어갈 뿐입니다. 아론의 제사니 대속죄제니 하는 복잡하고 머리아픈 구약의 제사법은 제껴두고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부활! 이거면 된다. 십자사 십자가 예수피 예수피만 부르짖는 자들이 넘쳐납니다. 

그러나 복음의 시작은 예수님의 세례받음부터 입니다.

저는 한국교회가 쇠퇴하는 것이 세례의 남발이라고 생각합니다. 군대에 가면 훈련소에서 초코파이 하나 더 먹으려고 햄버거 한번 먹으려고 세례를 받습니다. 전도라는 이름하에 예수님이 이 땅에 내려와서 받은 그 세례를 초코파이만도 못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대부분의 교회가 그렇습니다. 정말로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고 십자가 사건에 동참한다는 마음으로 세례를 받을까요? 어릴때부터 교회를 다니고 부모님도 다 교회를 다니니 만15세가 될때쯤, 대략 중2가 될때쯤 단체로 우르르 세례를 받습니다. 안받으면 성찬식에 참여하지 못하니 세례를 받고 어른들처럼 성찬식에 참여하고 세례받지 못해서 성찬식에 참여하지 못하는 초신자가 동생들보다 잘난것 같은 기분에 우쭐 할뿐입니다. 

왜 제가 이런 말을 하느냐면, 제가 그랬기 때문입니다. 세례는 한번만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나중에 믿음없을때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때 받은 세례가 제일 안타깝습니다.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를 내 생명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구원의 사역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세례를 받았다면 내 평생에 그 날을 잊을 수 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렇다고 그 날짜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언제 세례받았느냐고 물어보는 이단들이 있습니다. 세례받은 날짜가 아니라 내가 믿음으로 세례받았는가가 중요한 것이니 헷갈리면 안됩니다.

머리 아프고 헷갈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왜 아론에게 제사법을 알려준 것인지 제사의 의미가 무엇인지! 왜 세례요한이 아론의 후손이어야 하는지, 예수님의 그 세례가 무엇인지, 십자가 사건과 부활이 무엇인지 

이것들을 알고 믿음으로 거듭난 자들이어야 그리스도인으로써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 사는 지혜를 알려주는 다른 종교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불교에도 성경에서 말하는 가르침과 비슷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무엇이 다른지 제대로 알지 못한채 적당히 세례받고 직분 받았다가 뭔가 맘에 안들면 다른 종교로 갈아타는 자들이 많다는 사실이 한국교회 교육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이 물의 복음과 피의 복음의 전제는 부모의 사랑과 같은 하나님의 사랑이 있음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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