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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이크 미니스트리/2024 말씀을 걷다

말씀을 걷다 룻기 1-2장

룻기는 이방 여인 룻을 며느리로 삼은 한 가족의 이야기로 이스라엘의 유일한 소망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다는 메시지를 품고 있다. 가장 암울했던 사사시대에 룻기는 어두운 이스라엘에게 은혜와 소망의 말씀이 된다.
 
유대의 베들레헴에 살던 한 가족이 흉년을 피해 모압으로 이민을 갔다(룻기 1:1). 가장의 이름은 [엘리멜렉]으로 ‘하나님 만이 나의 왕이시다’라는 뜻이다. 그러나 베들레헴에 닥친 흉년 앞에서 이 가정의 왕은 하나님이 아니었음이 드러난다. 이런 모습은 사사 시대에 특별한 모습이 아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지만, 그 은혜 아래 사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소돔과 고모라를 선택한 롯은 그곳에서 불로 심판을 받은 후에 그 자신과 두 딸만 남게 된다. 그 때, 롯의 두 딸이 대를 잇기 위해 아버지를 통해 후손을 생산했다. 그 중에 하나가 암몬이고 다른 하나가 모압 이다. 이렇게 엘리멜렉이 흉년을 피해 간 모압은 불행한 역사를 가지고 있었고, 우상숭배가 충만한 곳이었다.
 
그런데 모압에서 엘리멜렉이 죽고, 이 가정에 나오미와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이 남게 된다. 이 두 아들이 오르바와 룻 이라는 모압 여인과 결혼을 했다. 그런데 그들이 거기 거주한지 십 년 즈음에 아들 말론과 기룐도 죽는다. 그래서 이 가정에는 여인 셋, 시어미 나오미, 모압 며느리 오르바와 룻 만 남게 된다. 여인 셋만 남았다는 뜻은 생산이 없는, 곧 [죽음]을 상징한다. 세 여인이 그렇게 사는데, 어느 날 나오미에게 고향 베들레헴으로부터 풍년 소식이 들려왔다. 그래서 나오미는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룻기 1:6)  
 
이 말씀에 나오미가 [듣고]라는 표현이 나온다. [들음]이 시작이다. ->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말씀으로 말미암는다(로마서 10:17). 은혜를 입을 사람에게 하나님은 듣게 하신다. 여리고의 라합도 그랬다. 라합은 가나안으로 들어오는 이스라엘과 그 이스라엘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고 정탐꾼에게 말했다. 라합의 [들음]이 라합을 구원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스스로 물어야 한다. 과연 나는 말씀을 듣는가?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씀을 듣지 않기 때문이다. 진실로 그렇다.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귀에 들리는 것 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말을 듣지 않는다’는 말은 귀가 안 들린다는 뜻이 아니라 ‘순종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문제는 항상 불순종에서 시작된다. 들음은 전 인격적인 반응이다. 그냥 지적으로 이해가 되고, 인정하는 들음이 아니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의 확인도 아니다. 들음은 순종이다.
 
[기도]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Where you go I will go, and where you stay I will stay. Your people will be my people and your God my God. (룻기 1:16)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마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인격을 가지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게 하옵시고, 은혜의 자리, 말씀의 자리를 떠나지 않게 하옵시고, 듣고 싶은 말씀만 듣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이마에 표를 삼고 손목에 기호를 삼아 순종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