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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이크 미니스트리/2024 말씀을 걷다

말씀을 걷다 사무엘하 9-12장

 

사무엘하 9-12장
 
사무엘하 9장에는 므비보셋이 등장한다. 다윗이 사울의 집안에 생존하는 자가 있는지를 묻고 사울의 집에 종으로 있는 시바라는 사람이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있다고 말한다. 므비보셋은 사울 집안이 몰락할 때 시종이 안고 궁에서 급히 나오다가 떨어트려 다리를 절게 되었다. 다윗은 므비보셋을 궁으로 불러들인다. 다윗이 어떤 연유로 자기를 불러 들이는 지를 모르는 므비보셋은 두려워 한다. 할아버지 사울이 다윗에게 원수로 행했기 때문이다. 다윗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버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할아버지 사울의 모든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을지니라 하니 그가 절하여 이르되 이 종이 무엇이기에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하니라” (사무엘하 9:7-8)
 
이 말씀의 내용대로 므비보셋은 다윗의 자식 중 하나처럼 함께 왕의 식탁에서 밥을 먹으며 평생을 살게 된다. “므비보셋이 항상 왕의 상에서 먹으므로 예루살렘에 사니라 그는 두 발을 다 절더라” (사무엘하 9:13)
 
다윗은 어디로 가든지 승리 한다. 그 안에 므비보셋의 이야기는 다윗의 관대함에 대한 이야기 이지만 동시에 은혜가 무엇인지를 품은 사건이다. 그리고 11장에 와서 밧세바 사건이 일어난다. 이 때부터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는 사람이 된다.
 
시편 51편은 제목이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그에게 왔을 때]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주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시편 51:1-4)
 
다윗은 죄의 용서를 빌고 있지만, 자신이 범죄한 죄를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존재] 로서의 자신을 회개하고 있다. 개혁자 마틴 루터는 ‘We sin because we have to. 우리는 죄를 지을 수 밖에 없어서 죄를 짓는다’고 했다.
 
다윗은 인간의 본질적인 죄 된 모습을 밧세바 사건을 통해서 대면하게 된다. 바로 이것이 다윗의 회개에 나타난 특별한 부분이다. ‘내가 그동안 잘하다가 이번에 한번 실수를 했으니 용서해 주십시오’가 아니라, [나는 원래 존재적으로 죄인입니다] 라는 고백이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편 51:5) 라는 말씀은 [나는 죄라는 재료와 원소로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밧세바의 사건에 대해서 이어지는 시편 51편을 계속 보면 다윗은 사건에 대한 용서를 구하지 않고 [존재에 대한 구원]을 간구하고 있다. 다윗이 골리앗 앞에 서서 소리친 신앙적 확신, 사울에 대해 마지막 까지 지켜낸 권위에 대한 순종, 의리 등은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하는 가장 이상적인 표본이다. 그러나 지금 다윗은 밧세바 사건까지 왔다. 지금까지는 다윗이 잘 하다가, 지금에 와서 전쟁 중에 왕이 궁에서 빈둥빈둥 게으르게 있다가… 어쩌다가 한 번 넘어진 것인가? 다윗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다윗은 [나는 본질적으로 죄인]이라고 고백한다. 남들이 자기를 잘 보아주고 존경받을 때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는 뜻이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주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시편 51:1-2) -> 다윗은 여기에서 죄를 1)죄과(Transgression), 2)죄악(Iniquity), 3)죄(Sin)로 표현하고 있다. 이것을 신약에서는 ‘죄’라는 한 단어로 집약하는데, 인간의 영적, 혼적, 육적인 문제를 내포한 용어로서 모든 인간의 본질이며 현 주소이다. 다윗이 침상을 적시는 눈물에 대해서 칼빈은 그의 기독교 강요의 첫머리에서 이렇게 기록했다.
 
“우리 자신의 본질(죄인 됨)을 알지 못하고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
 
밧세바의 사건은 다윗이 인간의 본질을 깨닫게 되는 사건으로 다윗을 통해 주시는 여러 메세지 중에서 ‘복음의 본질에 관한 가장 강력한 메세지’이다. 성경은 예수님의 족보에 다윗과 밧세바의 이름을 올려놓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복음을 증언한다. 밧세바 사건은 하나님께서 주신 왕의 힘으로 살인 밖에 하지 못했다는 사건이며, 밧세바는 그 아름다움을 가지고 비극을 불러왔지, 아름다움의 열매를 만들어내지 못한 존재를 드러낸다. 하나님께서 바로 그 기가 막힐 웅덩이에서 꺼내 주신 것이다.
 
바로 이것이 구원받은 자의 영광이다. 새생명을 얻은 자 만이 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하고, 생명을 가진 자로 살아야 한다. 이제 성경은 다윗의 후반부 인생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다윗의 인생에 담으신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펼치신다.
 
[기도]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온 이스라엘 앞에서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You did it in secret, but I will do this thing in broad daylight before all Israel. (사무엘하 12:12)
 
항상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삶을 만들어가게 하옵소서(Coram Deo).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