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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이크 미니스트리

시편 107-118편

모자이크 미니스트리 <말씀을 걷다> 시편 107-118편

1. 시편 107편은 “여호와께 감사하라”는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독교 신앙이 말하는 ‘감사’의 근거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2. “범사에 감사하라”(데살로니가전서 5:18a)는 말씀은 절대감사입니다. 왜냐하면 ‘범사(凡事)’에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조건이 충족되어서 감사하면 그것은 절대감사가 아닙니다. 조건적 감사는 ‘조건’에 감사가 갇히지만, 절대 감사는 그 결과를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입니다. 감사는 축복을 빨아 들입니다. 그리고 감사는 신앙생활의 비밀입니다. 목회자로써 여러분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을 꼽으라면 ‘범사에 감사’ 하시라는 것입니다.

3. 오늘 우리가 먹고 걷는 시편 107편에서 시인의 찬양이 절대감사로 시작하는 것은 그가 여호와 하나님의 선하시고 인자(헤세드)하시며, 속량하심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절대감사의 토대위에 시편 107편은 인생을 상징하는 몇가지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1) 방황: “그들이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하고”(시편 107:4) 이 모습은 인생의 모습 중에서 가장 보편적인 모습입니다. 인생은 방황합니다. 인생은 사람에 대해서 상대적 신뢰로 인해 방황합니다.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릅니다. 사람들은 내가 받아들여질까 하며 방황합니다. 광야 사막 길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일들에 대해서도 방황합니다.

2) 피곤: “주리고 목이 말라 그들의 영혼이 그들 안에서 피곤하였도다”(시편 107:5) 인생의 광야 사막길에서 ‘방황’하다보니까 피곤합니다. 만족이 없고, 이 사람일까? 저 사람일까? 하면서 방황을 하기 때문에 피곤합니다.

3) 묶임: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시편 107:11) 쇠사슬에 매였다는 말은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면서 어딘가에 묶여 사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이 묶여있다는 것이 매우 곤고합니다.

4) 고난: “미련한 자들은 그들의 죄악의 길을 따르고 그들의 악을 범하기 때문에 고난을 받아” (시편 107:17) 인생이 당하는 고난은 크게 두가지입니다. 자기자신의 실수나 선택의 결과로 온 고난이 있고, 자신과는 상관없지만 억울하게 오는 고난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두가지의 고난을 통해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대로 되기를 바라지만, 성령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만약에 우리의 원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면 우리는 매 번 망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원대로 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나는 현상이 ‘고난’입니다.

5) 항해: “배들을 바다에 띄우며 큰 물에서 일을 하는 자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들과 그의 기이한 일들을 깊은 바다에서 보나니”(시편 107:23-24) 여기서 시인은 인생을 바다에 배를 띄워 일을 하는 자로 묘사합니다. 곧 이 세상을 바다에 비유했습니다. 바다는 한번도 같은 파도를 일으키지 않습니다. 계속 다른 파도가 밀려옵니다. 경건한 심리학자인 스캇 펙은 살아있는 인생을 ‘아직도 가야할 길’, ‘끝나지 않은 길’이라고 하면서 “인생은 고해(苦海:괴로운 바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인생은 어렵다, 그리고 복잡하다”고 했습니다.

4. 인생이 이와 같습니다.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즉 광풍이 일어나 바다 물결을 일으키는도다. 그들이 하늘로 솟구쳤다가 깊은 곳으로 내려가나니 그 위험때문에 그들의 영혼이 녹는도다. 그들이 이리저리 구르며 취한 자같이 비틀거리니 그들의 모든 지각이 혼돈속에 빠지는도다”(시편 107:25-27)

파도가 치는 바다에서 떠있는 배를 생각해 보십시오. 광풍이 일어난 파도안에 있는 배는 나뭇잎 같은 처지입니다. 우리 인생이 이와 같은데, 이것을 시인은 ‘혼돈속에 빠지는 도다’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시편에서는 이런 파도를 하나님의 ‘노여움’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노여움은 잠깐이고 그의 인자는 끝이 없다’고 합니다.

5. ‘노여움’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아프’입니다. 이 아프는 ‘콧구멍’이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하나님이 흙으로 인간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습니다. 이 콧구멍은 하나님이 인간을 만든 다음에 하나님의 숨을 불어넣으신 곳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인간은 ‘생령’이 됩니다. ‘아프’ 곧 하나님의 노여움은 사실상 우리를 살리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을 약간 의역하면, ‘당신이 아프면 살아있는 것’입니다.

6. 시편 기자는 인생을 상징하는 방황하여 피곤한 인생들이, 묶여있고, 고난 중에서 항해하는 인생들이 그 안에서 여호와께 ‘부르짖는다’고 노래합니다.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시편 107:6a),

“이에 그들이 그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시편 107:13a),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시편 107:19a)

인간은 광야의 사막길에서 하나님의 노여움(아프)으로, 근심중에, 고통중에,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입니다. 이렇게 시편 107편에서는 ‘여호와께 부르짖는 것’이 후렴 처럼 반복됩니다. 그러면 이것이 무엇일까요? 인생이 겪는 이런 ‘문제들이 우리로 하여금 여호와께 부르짖는 자리로 인도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 부르짖는 자리는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는 것’입니다.

7. 미즈노 겐조(Mizuno Genzo, 水野源三 1937-1984)는 ‘눈 깜박이 시인(The Blinking Poet)’ 이라는 별명을 가진 일본의 시인입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홍역으로 식물인간이 된 그는 신체중에서 눈만 깜박일 수 있었습니다. 가련한 처지의 그에게 같은 마을에 사는 목사님이 성경책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8. 겐조의 어머니는 척추가 마비가 되어 앉아 있을 수 없는 사랑하는 아들이 엎드린 채 라도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작은 나무받침대를 하나 만들어 주었습니다. 겐조의 어머니가 나무 받침대위에 성경책을 펴놓아 주긴 했지만, 겐조는 손가락을 쓰지 못하니까 책장을 넘길 수 조차 없었습니다. 그래서 겐조가 성경 한 장을 다 읽은 후 눈으로 깜박깜박 신호를 보내면, 옆에 앉아있던 그의 어머니가 책장을 한 장씩 한 장씩 손으로 넘겨주었습니다. 겐조는 남아있는 눈으로 성경책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성경은 소년 겐조에게 자신을 몰입시키는 하나의 세계였습니다. 그는 매일 거르지 않고 성경을 읽어나가다가 그 속에서 예수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그러자 사고방식이 긍정적으로 변화되고, 자신이 살아야 하는 존재의 의미를 발견하여, 그의 얼굴은 날로 밝아져갔습니다. 밝은 그의 주위에 사람들이 더 몰려들게 되고, 그의 얼굴에는 항상 웃음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겐조가 웃음을 지어보이는 것은,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아름다운 방법으로 누구에게나 만면의 웃음을 지어보인 것입니다. 그래도 무척이나 답답했을 것입니다. 그는 나중에 지은 시에서 “소리내어 고맙다 말하고 싶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9. 몸이 부자유스럽고, 말조차 못하는 그가 어떻게 시를 지을 수 있었을까요? 그 계기는 겐조를 진찰하던 의사가 ‘예’라고 대답할 때는 눈을 감으라고 주문을 한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겐조의 어머니는 이것을 단순한 대답 뿐만 아니라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적용한 것입니다. 그의 어머니는 철자가 적혀있는 종이를 한장 그앞에 놓아 두고 막대기로 한자 한자 짚어 나가면서 아들의 눈동자를 살폈습니다. 어머니가 들고 있는 막대기 끝이 자기의 원하는 글자에 가서 닿으면 그것이 맞다고 겐조는 눈으로 신호를 보내었고, 그러면 그의 어머니가 그 글자를 뽑아서 다른 종이에 옮겨 적었고, 이렇게 고통 중에서 겐조가 눈으로 한자 한자 모아서 적은 글이 시가 된 것입니다. 이렇게 미즈노 겐조는 ‘눈깜박이 시인’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한 줄을 적는데 1주일이 걸리기도 했습니다. 이분이 지은 시 중에 <괴롭지 않았더라면> 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10. 만일 내가 괴롭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드리지 않았을 것을… / 만일 모든 형제 자매들이 괴롭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의 사랑은 전해지지 않았을 것을… / 만일 우리 주님이 괴롭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의 사랑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을… 미즈노 겐조 <괴롭지 않았더라면>

11. ‘하나님의 노여움’이라는 표현은 우리가 생각하는 ‘화가 난 상태’가 아닙니다. 성경에 하나님의 감정이 스며들어 표현된 것은 그분을 인격으로 묘사하는 것입니다.

이 노여움은 인생이기에 당하는 고통을 의미합니다. 이 고통이 힘든 것인데 역설적으로 이것이 우리가 사는 길이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은 하나님 앞에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정말로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것’(시편 73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통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습니다.

12.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신앙생활의 내용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않을(못할) 수만가지의 이유를 만들어 내는 것이 사탄이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십시오. 어떤 환경과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당신을 붙들어 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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