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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이크 미니스트리

시편 119편

모자이크 미니스트리 <말씀을 걷다> 시편 119편

1. 시편 119편은 성경에서 가장 긴 장으로 176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시는 각각 8절씩 나누어지고 매 여덞절마다 두운(頭韻)이 있는데, 히브리어 알파벳 22자의 순서대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8×22=176이 됩니다. 히브리어 알레프(첫 알파벳)에서 타우(마지막 알파벳)까지 두음으로 연결됨으로, 예수님께서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는 것처럼 ‘기록된 말씀’의 모든 것을 상징하는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이 말씀으로 설교를 한다면 히브리어 각 두운에 따라 22번을 강해하면 좋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 중에서 앞쪽 부분을 먹고 걸어봅니다.

2. “행위가 온전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음이여 여호와의 증거들을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편 119:1-2)

이 말씀에서 ‘복’은 ‘에셰르’라는 단어인데 ‘아사르’에서 유래한 단어입니다. 이 단어의 뜻은 ‘똑바로 가다’, ‘성공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복인은 하나님을 향해서 똑바로 가는 사람이라는 뜻이 됩니다. 앞에서 시편 119편은 ‘말씀시’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따라 사는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3. 반대로 불의한 사람은 기준이 흔들리거나 모호한 사람입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보면 불의한 재판장의 비유가 나옵니다. 어느 마을에 억울한 일을 당한 과부가 재판장을 찾아왔습니다. 그녀는 억울한 + 과부입니다. 감정적으로 사회적으로 약한 그녀를 재판장은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자신에게 뇌물을 가져올 수 없는 과부를 위해 자신의 시간을 내어주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불의하다’고 했습니다.

4. “내가 주의 모든 계명에 주의할 때에는 부끄럽지 아니하리이다”(시편 119:6)

아담과 하와가 범죄했을 때 그들은 부끄러워 했습니다. 그래서 나뭇잎으로 하체를 가렸습니다. TV를 보면 죄수를 호송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담길 때 한결같이 얼굴을 가리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부끄럽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부끄러운 존재입니다. 그런 사람이 부끄럽지 않으려면 말씀에 주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5.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시편 119:9)

히브리 알파벳의 두번째 철자를 두운으로 9절이 시작됩니다. 이해하셨죠? ‘청년’은 ‘나아르’라는 단어로 작은 청소년을 의미합니다. 갈대상자에 담기는 갓난 아기 모세를 지칭할 때 사용된 단어입니디. 그 의미는 아직 어려서 철이 없는 것입니다. 철이 없는 사람을 무엇으로 교육합니까? 말씀입니다.

6. 우리나라에서 만난 모든 학부모나 선생님들은 한결같이 우리나라 학교교육의 문제를 알고 있고 위기라고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아이러니 한 것은, 그렇게 말하는 분들이 모두가 그 흐름에 따라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기 아이가 떨어지거나 도태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인것 같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것은 인생에서 아주 아주 아주 작은 일부분인데 말입니다. 자녀에 대한 교회와 부모의 지혜로운 사랑과 용기를 구해야 하겠습니다.

7. “나는 땅에서 나그네가 되었사오니..” 여기서 나그네로 번역된 히브리어 ‘게르’는 체류자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나그네는 일시적으로 머물다 떠나는 사람입니다. 땅에 거주하지만 일시적으로 거주한다는 의미입니다. 모세는 자기 아들 이름을 ‘게르솜’이라 지었습니다. ‘타국에서 나그네가 되었다’는 뜻 입니다. 모세가 자기 아들 이름을 게르솜이라 지은 이유는, 지금 자신이 사는 곳은 자기 땅이 아니라 타국임을 잊지 않기 위함입니다. 다시말해 언젠가 고향을 찾아 떠나야할 존재임을 잊지 않기 위해서 아들 이름을 게르솜이라 지었습니다.

8. 땅이 전부인 사람은 땅의 논리에 순응하며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아침 안개 같은 것이 땅의 세월이며, 영원히 살 곳이 있는 사람은 이 땅에서 거류하지만 가치관이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천로역정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의 시민으로 이 땅에서 사는 사람은 말씀으로 인도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인생사용설명서이기 때문입니다.

9.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가장 복되고 아름답게, 존귀한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은 성경 말씀대로 사는 삶일 것입니다. 물론 말씀대로 산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이유는 주의 말씀은 어떤 경우에는 꿀처럼 달콤하지만 또 쓴 뿌리처럼 쓸 때도 있고, 비단결 처럼 부드럽게 우리를 감싸고 어루만져 줄 때도 있지만 비수처럼 날카롭게 찌르고 쪼개며 후벼 팔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말씀이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도 아닙니다.

10. 말씀을 삶의 자리에 적용하는 방법은 크게 두가지 방법을 기억하시면 도움이 됩니다.

첫째는, 말씀의 신학화입니다. 말씀의 신학화란, ‘오늘 내가 먹는 이 말씀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를 찾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끔 설교를 들으면서도 곁에 있는 사람의 표정을 살피거나 다른 사람을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오늘 이 말씀은 주님이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라는 신앙으로 겸손하게 받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둘째는, 말씀의 생활화입니다. 말씀의 생활화는 음식을 먹고 살 힘을 얻듯이, 말씀을 먹고 그것을 걸으면서 사는 것입니다. 내가 오늘 먹은 이 말씀을 내 생활 속에서 어떻게 걸으며 실천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또한 그것에 순종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을 ‘프락시스’, 곧 ‘행전’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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