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걷다 Mosaic Ministry, 민수기 21-24장
1. 민수기 22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을 바로 앞에 둔 모압지경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이제 그들은 모압을 지나서 요단강만 건너면 가나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는데 거기서 모압군대를 만나서 전쟁하게 되었습니다. 모압왕 발락이 모압지경을 통과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사술을 써서 저주하려 했습니다. 특별히 그는 발람이라는 거짓선지자를 불러서 돈으로 매수해서 저주해 달라고 청탁을 합니다.
“그가 사신을 브올의 아들 발람의 고향인 강가 브돌에 보내어 발람을 부르게 하여 이르되 보라 한 민족이 애굽에서 나왔는데 그들이 지면에 덮여서 우리 맞은 편에 거주하였고, 우리보다 강하니 청하건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민수기 22:5-6a)
2. 발락이가 발람이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부탁을 합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지금 모압을 뒤엎었는데, 수가 매우 많아서 위협이 되니까 내가 돈을 줄테니까 와서 그들을 저주해 달라고 합니다. 발람이가 떠나려고 하는데 이 나귀가 움직이질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발람이가 열이 받아서 나귀를 발로 차버렸습니다. 그랬더니 이 당나귀가 “왜 때려?”하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민수기 22:28). 성경에 동물이 말을 한 경우는 민수기 22장에서 처음 나오고 있습니다.
3. 이제 다시 6절로 가서 보시겠습니다. “우리보다 강하니 청하건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민수기 22:6a) 이것이 현실이요 세상입니다. 발락이 발람을 불러서 이스라엘백성을 저주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사탄의 미션입니다.
4. 그런데 발락이 발람을 부르는 장면에 중요한 힌트가 숨어있습니다. 발락이 무엇이고, 발람이 무엇인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가 사신을 브올의 아들 발람의 고향인 강가 브돌에 보내어 발람을 부르게하여 이르되 보라 한 민족이 애굽에서 나왔는데 그들이 지면에 덮여서 우리 맞은 편에 거주하였고,우리보다 강하니 청하건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내가 혹 그들을 쳐서 이겨 이 땅에서 몰아내리라.그대가 복을 비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줄을 내가 앎이니라”(민수기 22:6)
발락이 발람을 부른 이유는 이스라엘을 ‘저주해 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발람이 저주하면 저주를 받고, 축복하면 축복을 받는, 용한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안에 발람의 ‘정체’가 드러납니다.
5. 발락은 발람이 ‘축복하면 축복을 받고, 저주하면 저주받는다’고 말했습니다. 바로 ‘저주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저주권’이 없습니다.우리는 축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주권은 없습니다. 가끔 교회에서 저주권을 (예를 들면 목사님)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를 듣는데,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는 그리고 성도는 저주권이 없습니다.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저주할 수 있는 권세를 가진 자는 없습니다. 우리는 축복하는 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 발락의 입을 빌려 발람을 소개하는 장면에서 이미 발람이 ‘가짜’인 것이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발람은 거짓선지자입니다.
6. 발락이가 발람에게 돈을 많이 주고 거짓선지자를 데려다가 사술로 ‘저주’를 하게 했습니다. 사람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중에 하나가 저주입니다. 혹시 저주를 받아보셨습니까? 과거에 저주를 받은 적이 있어도 그 저주는 거짓입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이름으로 저주하면서 겁을 주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은 절대로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니까 염려하지말고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7. 저주는 거짓말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한 가지의 특권만 주셨습니다. 그것은 축복의 특권입니다. 우리에게는 저주권이 없습니다. 이렇게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하는 것이 바로 거짓선지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저주를 할 수 없고, 저주를 받을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아무도 우리를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발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들이니라”(민수기 22:12)
기독교는 ‘감사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감사가 충만한 것이고, 감사를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권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더 많이 축복하기를 바랍니다.
8. 지금 모압 지경에 진을 치고 있는 양떼들이 바로 우리들 입니다. 발람이 저주하려고 하는데 입에서 축복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번 반복됩니다. 세 번 사탄이 와서 우리를 저주하려고 할 때마다, 저주 대신이 축복이 나오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들인 것입니다. 잘나도 축복, 못나도 축복입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여러분은 너무나 중요하고, 아름답고, 존귀합니다. 그러므로 누가 우리를 저주하거나 못났다고 하면 그건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이제 24:10에 보면 결론이 나타나 있습니다. “발락이 발람에게 노하여 손뼉을 치며 말하되 내가 그대를 부른 것은 내 원수를 저주하라는 것이어늘 그대가 이같이 세번 그들을 축복하였도다” (민수기 24:10) 마귀가 우리를 대적할 때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축복하십니다. 그러므로 환경이나 어려움이나 사탄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9. 우리가 저주 받지 않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라디아서 3:13)
내가 잘나거나 잘해서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예수님께서 우리가 받을 저주를 십자가에서 다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저주의 상징이었습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예수님이 나를 위하여 저주 받은바 되사 우리를 속량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축복 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갈라디아서 3:9)
10. 베드로후서는 이렇게 발람에 대해서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자기의 불법으로 말미암아 책망을 받되 말하지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행동을 저지하였느니라”(베드로후서 2:15-16)
발람은 이스라엘이 미디안을 정복할 때, 죽임을 당하는데, 성경은 그의 마지막을 ‘점쟁이’라고 기록합니다. (여호수아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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